2021년 회고를 이제서야 올리는 이유는 3달에 걸친 글쓰기가 이제야 끝나서 그렇다. 하필이면 12월과 1월이 매우 바빴고, 하려는 말이 구체적이고 난해해서 가닥을 잡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로 해서 관련 시스템을 손보기도 했다.
21년의 토픽을 크게 정리해보자면 창업과 대학인 것 같다. 공부와 활동만 하던 고등학생과는 다르게, 대학생이라는 신분과 환경은 미래와 방향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하고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더이상 수과학 같은 불필요한 것들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정말 좋았다. 반면 도전에 뒤따르는 책임도 통감하면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해가 되었다.
그런 경험은 창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낱 고등학교 시절의 프로젝트 참여자가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는 리더의 위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프로젝트와 회사의 차이는 분명했다. 비품 구매는 엑셀 파일로, 작업은 학교에서 하면 됐던 과거의 프로젝트와는 다르게, 돈 계산부터 장소 선정 등 거의 모든걸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여러 이해관계와 서류가 맞닿는 위치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교내 팀플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어려운 과제를 해내면 우리는 비로소 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창업쪽으로 방향을 가지는 것이 맞는가 하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창업이 성공의 열쇠라고들 하는데, 사실 창업은 살얼음판 위를 옳게 걷는 것과 같다. 이런 쪽으로 열심히 살 바에는 오히려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활약하는 것이 더욱 안정적이고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새로운걸 도전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도전은 성공보다 신념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한 스페셜리스트의 관점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혁신가의 관점에서 도전은 혁신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하고싶은걸 하나씩 해보다 보면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게 되고, 경험은 거름이 되어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한 가닥이 잡힌다. 혼자 힘들고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하고자 할 때 경험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새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게 광적인 경험주의의 원천이었다. 하고싶은걸 다 해봐서 더이상 할 게 없을 때,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 그렇게 2년간 원동력으로 쓰던 절박함이 모두 바닥났을 때, 비로소 무엇을 원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의 나는 사회 혁신가들을 보며 꿈을 키웠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미세 플라스틱은 침전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사회적 약자와 차별은 존재하는가. 문제가 많은 사회에 염증을 느꼈던 나는 공학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워 했었다.
그때 이후로, 이데올로기에 흔들리지 않는 과학자가 될거라던가, 제3세계를 위한 백신을 개발할거다, 오픈소스 기반의 적정기술을 활성화시키겠다, 국경을 넘어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거라 희망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는 대학에 간 후로 한동안 잊었던 꿈들이었다. 잃어버린 본분을 되찾고 나니 그리던 목표가 보인다. 그리고 이제서야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모두의 삶이 괜찮아지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겠다고 답하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동적으로 소비되는 프레임에 씌워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강 건너 불 보듯 지켜보면서, 자본주의, 다수결, 또는 인간 본성의 폐해임을 너무나 쉽게 인정하곤 한다. 그러나, 잊혀져가는 사회의 이면이 성악한 인간과 사회의 말로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성장은 그 방향으로 일어나야 한다. 이 관점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소프트웨어와 스타트업이란 분야는,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모두의 삶을 챙겨가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학교 4년 중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대로 졸업하게 되면 곧장 취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고싶은걸 할 수 있는 시간은 3년 남짓 남았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3년이 프로젝트에 있어 얼마나 짧은지 경험한 바 있다.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이 3년 내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으려면,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도전은 성공보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마 수차례 실패하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지며 회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