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마치 자기계발서라도 읽어야 할 것처럼- 부족함을, 알았다는 것밖에는- 이 회고에 쓸 말이 없어 안타깝다. 자유의 무게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사람들의 존재와- 세기를 넘어 사회 구조를 변혁해 온 거대한 담론, 그리고 프랙탈처럼 뻗는 우주의 거대함을 알게 되었지만, 돌아온 것은 더 과잉된 자의식뿐이라 허무하다. 방구석에 앉아 골똘히 생각한 들 얻어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지만, 지금은 경험은커녕 산책을 나서지도 않는다. 결국 얻은 것은 깨질 듯이 복잡한 머리와 얕아진 철학, 나빠진 시력, 그리고 막막한 현실, 사랑뿐이었다.
1. 역량이 부족한 창업가
고도로 성장한 창업가는 철학자와 구별할 수 없다. 창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시장이나 지표 같은 표면적 면보다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이런 면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경험 전반에 가이드라인이 될 정도로 간결하면서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기에 이 씬에는 두 가지 성장이 있다. 하나는 MECE, SWOT 같은 문제해결 전략을 포괄하는 씬 자체의 경험이 있고, 또 하나는 세상에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즉 철학이 있다. 둘은 독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얕은 철학 아래 전략은 존립할 수 없다.
(2022년 경기대에서, 세 타임의 멘토링을 마친 후)
“이렇게 어려운 창업 아이템은 저도 처음이네요. 난해한 아이템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마음에 걸렸던 건 창업 아이템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이유였다. 세상에 없었던, 그래서 유의미했던 아이템이었고, 실질 시장보다 학문적인 가치가 높았다. 1년간 열심히 디벨롭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시장과 방향성도 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단지 지금에서야 “우리가 그때 원했던 것이 이거였어! “하며 업계 등지에서 보이는 자그마한 변화를 관찰만 하고 있다. 친구는 어떻게 프로토타이핑도 안 하고 인간의 특성을 알겠냐며 MVP를 먼저 만들어보길 원했으나, 난 달랐다. 사람들을 더 면밀히 관찰할수록 좋은 제품과 피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정적인 이슈도 한몫했다. 피칭해서 설득에 성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봤다.
실력에 레퍼런스가 될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고 다녔다. 작년 후반기에는 시장을 잘 보는 대표와 같이 일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했던 곳이다. 올해 초에는 창업한다는 중학교 동창이자 친구를 만났고, “게더링”과 “터닝”을 만든 사업가 김선재 대표, 문용우 공동창업자 선배님과 밥을 같이 먹었다. 그 외에도, 작년에 판교에서 뵈었던 대표님과도, 여러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금한 것은 하나, 우리우리는 왜 창업해야 하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가. 각자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도 보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철학도 시장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분류하자면 기술보단 UI이었고, 이로 하여금 사람들의 소통 방식을 바꾸길 바랐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어디에 파느냐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스템이 사람들이 필요할 이유도 모호했다. 둘 다 키워야 했다. 시장은 나중에 경험하더라도 철학 하나는 명확하게 키우고 싶었다. 제품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말할 수 있으면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도 알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가중될 때쯤, 퇴사했고 입대했다.
2. 책임을 맡은 주니어 개발자
올해 2월은 과도기였다. 태풍의 눈에 들어온 듯 맑음이 반짝 찾아왔다. 과거로는 퇴사와 인수인계로 빚어진 머리 아픈 일이 있었고, 미래에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를 기준으로 성장을 재정의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가 단점을 찾아내는 인스펙터를 들고 나를 샅샅이 뒤지는 것처럼, 내가 못 하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때 알았다. 스타트업의 개발자란, 단순히 코드를 잘 짠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때로는 리더도, 싸움꾼도 될 줄 알아야 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진 않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들 경험이 부족했음을 인정했으면 한다. 모든 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름이란 없으며,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한 엔지니어였다. 프로세스를 애자일로 개선해서 11월까지 몇 가지 핵심 기능만 만들겠다고 한 게 중간관리자를 거쳐 대표 귀에 11월까지 완성으로 들어갔다. 졸지에 난 2달을 더 끌고도 앱 하나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 됐다. 그렇다고 우선순위 배분이 잘 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기능을 먼저 만들고 테스트해야 하는데, 디자인 완성도에 너무 공을 들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다. 나는 통과하지 못한 예창패를 통과한 기업에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은 경험과 실력 면에서 좋은 기회였다. 내가 달랐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회사의 실세처럼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전문가의 입장에서 강경하게 대응했으면, 문제 상황을 더 조기에 발견하고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바램은 대표의 업무를 떠맡으려 한 내 오지랖임을, 권도균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나중에야 알았다.
“아.. 이거 안 되겠는데요. 저보단 경영 차원에서 해결을 봐야 해요.”
이 말을 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NC소프트에 재직 중인 학교 선배님을 뵈었다.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이, 사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게, 어떤 말을 했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의 신뢰도를 얻기 이전에, 일단 말해보지도 않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만큼 잘 몰랐다. 잘될 것이라며 희망을 주는 것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음을, 낙관보다 비관이 나음을 알았다. 창업가로서의 경험만 있지, 사원으로는 처음이었다. 회사가 뭔지도 모르면서 창업하겠다고 설치고 있었다. 어렵게 발견해 낸 단점 하나였다.
3. 의심하고, 버티고, 의심하고
모든 게 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겠다 싶은 시점이다. 안전해지려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사람도, 제품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하고 자축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경쟁에서 밀리며, 예측불허한 사고가 터진다. 개발 좀 하면 연봉 4-5천은 번다는 말이 공론화된 시점에서, 나는 “이 정도면 꽤 괜찮네” 하며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 면모도 부족했다. 거울에 비친 호랑이를 보며 으스대는 하룻강아지일 뿐이었다.
사람의 성장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새로운 걸 배우고 체화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고 여행을 가거나 무언갈 만들며 배우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옳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다름을 이해하거나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는 등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기에, 틀렸음을 인정하는 건 때때로 고통스럽다. 누군가 나타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한다면,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믿을 수 없지 않은가? 진실을 마주하는 건 두렵다. 그러나 안전을 의심해야 사고를 예방하듯, 진실을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
불가능한 챌린지가 생긴 상황과 해내야 할 압박에 놓였다. 공군 전자계산 모집병으로 들어온 나는 새로운 경험이란 이유로 보안체.계관리가 뭔지도 모른 채 지원한다. 공군은 훈련단 수료 후 3주간 특기 학교에서 교육받는데, 이때 성적을 반영하여 자대를 결정하게 된다. 쟁쟁한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고,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오르지 않는 한계에 봉착했다. 어찌해야 할 도리를 몰랐던 그때 당시, 수신자 부담 전화기를 들고 원하는 자대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하루 30분을 붙잡고 흐느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을 마주했고, 버텨내야 했다. 지금은 1지망에 어렵게 와있다.
잘하는 것을 피봇(pivot)하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수·과학에서 밀리니 특기자로 전향했다. 특기자 할 실력이 안 되니 영상을 만들며 견문을 쌓았다. 너무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런 사람에게 못하는 걸 해야 했던 상황은 생소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단점에 직접 부딪혔다. 그때 알았다. 해보지도 않은 체 못 하겠다며 쉽게 겁을 먹었다. 대치도 하지 않은 채 패전 선언을 하는 꼴이었다. 얼마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경쟁하기를 주저했던 것인가! 일단 도전해 봐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대표들이 보인다. 로켓부터 시작해 로봇까지. 유효시장이 부족한 데 자본금이 많이 필요하고, 멀리 가능성을 본 대기업이 꿰차고 있는 영역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불가능한 도전을 하는 조금 무모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꿋꿋이 목표를 향해 달리며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 도전한 만큼 값진 결과를 얻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였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가능성을 저울질하기보다 묵묵히 삽질해야 할 때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기업가가 될 자격이 있는가. 오히려 남의 성공을 따라 하기 바쁜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
그 이후로도 내재한 많은 단점, 즉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들을 밝혀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며 생긴 변화다. 조금 더 겸손하고, 경청하며 공감하도록 변화했다. 발언보단 질문을 하게 됐다. 다양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능력을 갖추기엔 하염없이 부족하며, 더 들으면서 이를 보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때로는 장점을 키우는 것보다 진실을 파헤치며 단점을 보완해야 함을, 그래야 더 성숙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4. 정답은 가고 사람이 남음을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때로는 노인과 바다처럼 고독하며, 데미안처럼 악하고, 로미오처럼 헌신적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 정답에 대해 고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 준비가 부족했던 시험을 후회하고, 서툴렀던 사랑을 아쉬워하며, 미디어에 뜨는 잘난 사람들을 보면서 애매한 나를 되돌아본다.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지만- 마치 학창 시절 싫어하는 이가 없던 엄친아 반 친구처럼, 아니면 모든 걸 누리는 부자처럼. 우리는 이미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음을, 또는 정답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둔다. 중독적으로 유튜브를 켠다. 운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부러워하고, 잘생긴 사람들이 연애를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며, 인스타 핫플을 찾아다닌다. 환상에 중독될 뿐이다. 스크린 밖의 주변은 회색빛이 되어간다. 한 번은 인스타와 유튜브를 모두 끊어봤다. 일주일 동안은 마음에 허무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허무함은 사라지고, 내 주변에 집중하게 됐다. 그때 알았다. 중요한 것에 시간을 들여야 함에도, 양산형 미디어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다.
한동안은 정답을 찾아 헤맸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삶은 사랑을 닮았다. 사랑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삶에도 정답이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처럼 남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특정 계층에만 존재하는 “삶을 잘사는 비법”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래야 했다. 그런 걸 잘 몰랐다. 감사함보다는 채찍질로 삶을 살았다. 그러한 나는 노력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삶을 생각했었다.
“Carpe diem, Seize the day”가 교훈이던 중학교 시절. 우리는 모티프가 된 그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사유했고, 자유를 누렸다. “현재를 즐겨라.”의 뜻이 지금의 향락을 즐기는 것이 아님을, 다만 일률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만의 특별함을 찾는 일임을 자연스럽게 느꼈다. 실패를 거듭하여 겪고 나니 문제의식이 생겼다. 성공하는 정답이 뭔지 궁금했고, 더 충격적인 진실을 원했고, 영감을 얻길 바랐다. 소중한 것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것을 혐오했으며, 이로써 변화를 추구할 동력을 얻었다. 정체성을 패션처럼 갈아입기 시작할 때쯤, 문제가 실재함을 느꼈다. 타인의 고유성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정답이 아니나, 나의 고유성이 사라지니 그게 정답 같았다.
이번 생일에는 홈파티를 즐겼다. 소중한 순간을 만들고 나니 다른 이의 생일도 정성스레 챙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살아왔던 것만큼 자연스럽고, 확실한 변화였다. 삶은 사랑을 닮았다. 내가 즐길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 줄 알게 됐다. 물론 이런 방식이 권력을 얻거나 부와 명예를 취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깨달아야 한다. 삶에 정답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허상을 좇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되려고 하지 말자. 나는 나다워야 한다.
5. 회고
올해를 탈 개발자의 해로 명명하고 싶다. 따라 하기를 잘했다. 그렇게 앱을 만들었고, 과제를 했고, 산출물을 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못 보던 가능성을 보고, 특유한 것을 추구했으면 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샤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것들을 위하여”에서, 그리고 안희경의 “최재천의 공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롱블랙”과 “북저널리즘”을 구독하면서 세상에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있음을 알았다. 개발자도, 창업가도 명확하게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나는 나일 뿐이다. 단어 하나에 나를 기대는 건 옳지 않았다.
내년에는 나만의 것을 더욱 만들어 나가고 싶다. 미디어가 조명하는 환상에서 벗어나 주변에 집중하고, 내가 정답임을 주장하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다. 확실한 내 분야가 있던 학창 시절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고, 발전시켜 나가야겠다. 안된다고 규정하기보다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람이 되고, 고유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그렇게 다시 정답을 찾아 헤매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눈으로 잘못된 편견을 갖지 않도록, 그리고 현실에 묻혀 고유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다. 올 한 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낼 수 있어 좋았고, 내년에도 이 소중함을 지켜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