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사랑에 관한 것이다.
요즘 강력하게 믿는 것 중 하나는 기독교인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본인들이 얻는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사랑하였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를 결정할 때 수원 비행단이 너무 가고싶었다. 하지만 동기들 중 서울사람이 너무 많았고, 이들 중 한 명만 수원을 갈 수 있었다. 나는 성적이 안나왔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나님께 수원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결론적으론 내가 수원에 왔다. 하지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같이 다니던 동기가 서울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다. 그 친구가 수원과 부산을 끝까지 고민했었지만 바로 아랫등수인 내가 수원에 가고싶어하니 부산에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덕분에 수원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한 형제를 두고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안전과 이득이 우선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기독교인은 그게 아닌 사람들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힘든 군생활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을 희생함은 물론 타인에게 친절하게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맞후임이었던 형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항상 자처했기에 덕분에 편하게 군생활할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유독 친절하고 항상 행복해보이는 간부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그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그 베풂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물며 “이런걸 더 누릴 순 없을까?” 하고 고민했으며 “내가 안하면 그들이 하겠지” 하며 이기적으로 굴었다. 사랑을 베풀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때론 혐오했다. 큰 죄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전역 후에도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 솔직히 교회 적응이 너무 힘들었는데 앞서 내게 베풀었던 그들을 동경하며, 미안해하며,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버텼다. 지금은 즐겁게 잘 다니고 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간단하게는 남에게 가지는 관심이고, 필요한게 있으면 도와주는 것.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게 많으려고 노력하고, 당신 곁에 내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나는 관계에 대하여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당연한 말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래걸렸다. 과고 시절 끝도 없이 이기적인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닫는 법부터 배웠고, 그렇게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나니 대학교에서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대면하는게 무서웠다. 적당할 만큼만 친해지길 원했으며 기대고 싶지 않았고 누굴 돕는 것 또한 두려웠다. 혼자 있는게 좋았지만 동시에 외로웠다. 감정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타인 보다는 내가 부족한 문제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렇기에 상처를 받더라도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난 정말 사랑을 배워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걸 기독교인들이 쑤셔넣듯 가르쳐줬다.
아직 배워야 할 사랑이 많다. 타이타닉에서 윈슬렛은 바다에 빠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카프리오를 의지하며 수평선을 바라본다. 이처럼 믿고 의지할 수록 사랑이 더욱 견고해진다. 처음엔 누군가를 믿는 행위가 탐탁지 않았다. 갑자기 길가다 마주친 사람을 쉽사리 믿을 수 있는가? 그래서 누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쉽게 믿고 따를 수 없었다. 사기라도 당하면,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나. 그러나 일단 믿었을 때 더 좋은 베풂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정말 짜릿했다. 마치 자이로드롭이 나를 안전하게 땅까지 떨어뜨려줬을 때 느꼈던 짜릿함이랄까? 나도 나를 믿고 베풀었던 그들처럼 일단 타인을 믿고 베풀 용기가 이제야 조금 생겼다. 더욱 큰 사랑을 담는 사람이 되도록 더 큰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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