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활은 지옥이었다. 사회성이 덜 자란 아이들은 짐승처럼 공부로 서열을 갈랐다. 중학생 따리가 미적분을 안다는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는 어떤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럴 줄도 모르고 나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컸고 무엇을 얼마나 할 줄 아는지 다 까버렸고, 이제 그 잘난 아이들은 놀아주는 일이 없었다.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며 말부터 잘하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나는 어차피 공부를 못하니 괜찮다며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매일 기숙사에서 한 시간씩 자기 친구들을 모아서 떠들어댔다. 대치동 N개년 기출 데이터는 내가 오르지 못하는 장벽을 그들이 쉽게 넘어서게 했지만, 성적이 안 된다며 나를 학원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처음엔 그런 문화가 몹시도 충격이었지만 여기에 살기로 한 이상 견뎌내야 하는 시련이었다. 어떨 때는 너무 힘들어서 졸업한 중학교에 찾아가서 여기에 애들 지원 좀 안 하면 안 되겠냐고 선생님께 부탁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문화는 달랐다. 자유롭게 어필하고 토론하는 색채를 겨우내 지워낼 때 즈음에야 그 아이들을 감당해낼 자신이 생겼다. 내가 사랑했던 문화를 다 지워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려 온다.
대학에 오고 사람들을 만나며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축복이 찾아왔다. 그때는 좀 어리석었던 생각이지만 그들과 같은 계열에서 일하기 싫다는 이유로 이공계열 진학을 거부했었다. 관계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해 대학교에 와서도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잔뜩 경계했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잘 대해 주었고 이런 사람들과 지낼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금 내 사회성의 부족을 느꼈다. 폐쇄된 집단의 사람들과 냉전하며 10대를 마무리했다 보니 사람 경험이라곤 두세 명이 다였다. 그냥 미친 듯이 많이 만났던 것 같다. 동아리를 5개씩 하면서 하나는 문과 쪽으로, 하나는 이과 쪽으로 고루 섞었다. 외국인 회화, 사회 문제 해결, 교육봉사, 컴퓨터, 테니스까지. 대학교는 부족해 창업 워크숍, AI 연구 커뮤니티, 교회, 군대까지 다녀왔다. 올해에야 비로소 사람과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 사이의 정치라는 게 개소리를 하더라도 내 편이 수긍하면 되는 문제라서 내 편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 언제는 전쟁을 주도하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하며 사과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사기를 불태우는 꼴이 되었다. 따라서 상대 편의 의심을 끌어내서 혼란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의 행동에 확신을 주게 되면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한다. 결국 소문은 학교 전체로 퍼지고 싸움에서 지게 된다. 어쨌든 혼란을 주는 것보다 루머를 퍼뜨리는 게 쉽기 때문에 그건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누가 내 편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내 편이었다. 반대로 나에 대한 루머를 굳이 내게 전달한다거나, 조금이라도 반대편을 지지하는 내색을 보이면, 얼마나 봤든 간에 절대 연락하거나 소통하지 않았다. 괴사한 조직은 아프더라도 잘라내야 안전하다. 그렇지 않다면 내 진영의 혼란을 야기하고 네트워크 전체를 썩게 만든다.
대학교에서 만나 친했던 형은 공부에 대해 정말 열정이 많았는데 어쩌다 내 고등학교 동기와 알게 되었다. 내게 고등학교 동기가 나에 대해 한 말을 종종 들려주는 일이 있었다. 나랑 고등학교 때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그 친구는 내적 친밀감이 왕왕 있었다. 그 친구도 어떻게 보면 나처럼 아이들에게 뒷말이 오고 가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좋은 말도 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 뒤로 오고가던 루머들을 곧이곧대로 그 형에게 말한 모양이다. 같이 랩실에서 일하며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언을 해줬었는데, 잘 처신하라며 그 친구의 말을 인용한 게 화근이었다. 세력에 비해 결집하지 못한 힘없는 개인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가해한다. 졸업 후 5년이나 지난 시점에 하는 말이어도 시간은 과거의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결국 랩실을 나오고 연구자의 길을 기꺼이 포기했으며, 둘과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알았던, 믿었던 친구인 만큼 실망이 컸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들을 박애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사람 좋아하고 어필 잘하는 중학교 시절의 나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연습을 통해 전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할 수 있다. 정치는 서로 사랑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비루한 수단이라 최대한 쓰지 않아야 하지만, 만약 누가 먼저 시작했다면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 같은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비슷한 루머는 퍼뜨리지 않겠지만 선전포고한 상대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대응할 수 있는 논리는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비열한 대치동 아이들과 다르게 우리 학교, 군대, 교회의 아이들은 얼마나 순한지 모른다. 그들을 볼 때면 비로소 행복해져서 나도 쉽게 사랑을 행하곤 한다. 썩은 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새순이 돋아나고 나서야 주어진 이 상황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건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과 다투고 나면 가끔은 울기도 한다. 앞에서는 안 울고 뒤에서 운다. 그럼에도 그 친구들과의 사이가 소원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확실한 내 편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지켜진다면 어떻게 하든 괜찮다고 느낀다. 그래서 행복하다.
P.S. 이따금 어떤 사람들은 행해지는 사랑을 언짢아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거나 섣불리 싸움으로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에서 그런 사람들과 굳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으면 된다. 앞으로 만날 다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붙잡혀 있지 않아도 괜찮다. 그럼에도 어울려야 한다면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대해야 한다. 그런 뜻이 아니니까 걱정 마셔도 된다 같은... 대부분은 여기서 경계를 내리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안 된다면 위와 같은 방법을 써 보자. 상대의 말을 들으며 충분히 생각하고 대응 논리를 구성한 후 차분하게 말하는 것이다. 적확한 논리는 흥분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전의를 상실하게 한다. 힘보다 말이 무섭다. 어떤 사람이 와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강함이다. 충분히 강할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고, 사람들이 내 편임을 느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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