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미친 성과의 해였다. 학교와 랩실, 창업을 동시에 수행했을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첫 학점 4.0 달성, 랩실에서는 20여편이 넘는 논문을 단기간에 읽어냈으며, 창업은 장관상 2건을 포함한 10건이 넘는 수상/사업선정 실적을 냈다. 부작용 또한 상당했다. 편입 포기 후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상당했다. 오전 9시에 학교에 와서 오후 10시~11시쯤 하교했었고 그러다보니 심한 번아웃이 10번 넘게 찾아왔다. 친구 3~4명을 잃었던 만큼 대인관계 또한 엉망이었다. 심한 여드름이 얼굴 전체로 번졌고 12월에는 교통사고도 났다. 사고가 났을 즈음, 뇌진탕이 심하게 걸려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복을 하며 심각한 고민을 했다. 이렇게 사는게 맞는 걸까? 일단 하나씩 걷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휴학이었다.
1월은 드디어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했다. 잘하고 열정있는 팀원을 소개받아 초기멤버로 합류하게 되었고, 고맙게도 매일같이 회사에 나와주었다. 혼자 출근하던 사무실에 팀원이랑 같이 일하게 되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깨달은게 있다. 기존 팀원들은 일도, 출근도 안하면서 비평만 하다보니 노이로제가 걸릴 뻔했다. 그런데 정말 좋은 팀원은 같이 일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알았다. 그 이후로 기존 팀원들에게는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함께 일하는 두 명만 남기고 나니 더이상 팀원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었고, 진행도 척척 되었다. 뭔가를 하기 전에 이걸 하는게 맞는지 싸우거나 팀원이 나갈까봐 쩔쩔맬 일이 없으니 확신에 따라 실행하면 되었다.
그러나 본질을 찾아헤메는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 제품이 어떤 형태로 세상에 나와야 하는지 너무 애매했는데, 이 지점을 찾기 위해 초기 제품에 이 기능을 추가하고 빼는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실 겨울 내내 제품만 만들었는데, 내 의견은 아니었지만 회의에 따라 제품 우선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따라가기로 했다. 설득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다 제품 우선을 결정했던 전략담당 팀원이 나가고, 생각지도 않았던 전략 업무를 떠안게 되면서 다시 판매 우선전략을 실행하게 되었다. 팀원이 나가면서 전략기획이 내 업무가 되었는데(사실 애초부터 내 업무여야 했지만) 그제서야 사업을 실행하는 주체가 리더여야 함을 알았다. 팀원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맡겨선 안될 업무까지 맡겼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마케팅과 운영/관리에 대한 감각이 돌아왔다.
제품 이전에 팔아보려고 했지만 파는 방법도 만만치 않았다. 링크드인 DM으로 한 명씩 연락을 해보기도 하고, 작년에 같은 지원사업에서 제품에 관심이 있다던 대표님과 만나보기도 했다. 그러나 각 기업마다 상황이 달랐고 그에따라 제품의 방향성도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제품이 없어도 팔 수는 있다. 이사람 저사람 다른 니즈를 수렴하고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제안해야 했지만 전문성이 너무 부족했다. 인프라는 좀 알지 몰라도 에이전트에 ADK니 KVCache니 하는 얘기를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미팅 한 두건 실패해도 만나는 사람만 많다면 괜찮다. 그런데 네트워킹 등으로 확보할 수 있는 모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 미팅까지 가는 경우는 1~2명이었기 때문에 비즈니스 미팅의 수를 늘리고, 솔루션 제안을 위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다음 과제가 되었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 아침마다 쏟아지는 AI 분야의 여러 아티클을 읽었고, 여러 컨퍼런스 행사에 참석해 현재 프론티어 상황이 어떤지 지켜보았다. AI Expo를 비롯해 Google의 GDG, Claude Bloom, AWS Summit, Hermes Agent Meetup까지 다녀왔고 한 번은 협력사 대표님과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작년 성대로 미팅을 갔을 때 서의성 교수님은 신규 기술이 나오면 직접 써보고 부딪혀보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그랬다. 비록 시간이 부족해 llm-d, vLLM, SGLang 등 써보진 못했지만 행사에서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많은 기업들을 보며 많은 귀감이 되었다. AI Expo는 모든 부스를 순회했는데 간혹 인상깊은 영업사원 분들도 계셨다. 나도 그들처럼 기술영업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템을 팔기 위해 찾아가는 것보다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맞다길래, 미팅 수 확보를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스레드나 링크드인에 글을 올렸지만 큰 호응을 얻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웹페이지도 만들고, 세미나에서 브로슈어도 뿌려보고, 인스타와 링크드인에 퍼포먼스 광고도 할 예정이다. 다만 타겟이 좁고 고객당 기대수익률이 높다보니 효과는 크지 않은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할지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이제 검색광고와 콜드메일을 시도해볼거고, 고객 관계 구축도 파이프라인 짜서 해보려고 한다. 결국 이렇게 열심히 찾고 실행해도 결과는 처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클릭하지 않을 이유, 쓰지 않을 이유를 없애고, 맨 땅에 헤딩하면서 계정 키우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아가는게 당면한 과제인 것 같다. 결과를 외면하려고 해봤자 남는건 알지 못하고 흐르는 시간일 뿐이고, 계속 실패에 익숙해져야만 하고 성공하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2~4월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2월에는 25년 회고를 쓰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였다. 25년에 깨닫게 된 많은 일들을 적다보니 예상 글자수가 3만을 넘어갔다. 1만 5천자쯤 쓴 순간에 포기를 결심했다. 사실 25년은 내게 너무 힘들었던 해라, 회고를 하며 돌아보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대신 파트1에 대해서만 올려보고 나머지 썼던 파트는 시간이 되면 지금처럼 단편선으로 공개해보려고 한다. 요즘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 쓸 맛이 난다. 시간이 날 때 틈틈히 쓰는 에세이가 보기도 편하고 쓰기도 편한 것 같다.
3월에는 아미콤 동아리 임원을 시작하면서 교내 창업생태계 강화를 위해 이런저런 기여를 해왔다. 3월 초에는 동아리 모집 홍보를 위해 임원진들에게 조언해주고 마케팅 의견 내고 했다. 기억나는 건 교내 보물찾기 포스터를 100장 정도 뿌려서 당첨자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였는데, 단 한 명도 여기를 통해 가입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팀원들의 열띤 홍보 덕분에 80명 가까이 부원들이 모였고, 사망 직전이던 아미콤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기여는 동아리 내에서 창업스터디를 시작한 것이다. 내가 과제를 내주면 스터디원들이 일주일간 해온 뒤 발표하는 형식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감사했다. 며칠 전 이 스터디가 성황리에 종료됐고 8명 중 7명이 수료할 수 있었다. 창업지원팀에 요청을 드렸더니 이런저런 프로그램 지원을 도와주셔서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4월에는 지원사업으로 바빴는데, 미팅한 고객사에서 제안한 솔루션으로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써서 이곳저곳에 지원했다. 한양대 주관의 창업중심대학 1차에 붙었고 2차는 떨어졌다. 모두의챌린지AX (기업주도과제)도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사실 지원사업은 본질에 가까운 일은 아니다. 1월에 프라이머 투자미팅에서 만난 권도균 대표님이 나를 돌려보내면서 한 말이 있다. 본질에 집중하라는거다. 지원사업으로 팀원 월급 줄 생각 하다 본질에 집중하지 못했다. 잘 쓴 사업계획서 하나는 남겼지만, 결국 마케팅과 더해 올해의 삽질 중 하나로 사라졌다. 사실 클로드가 사업계획서 잘 쓰지 않을까 하고 사업계획서 작성 스킬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고 돈과 시간만 날렸다. 역시 글은 사람이 써야한다. 성능좋은 앵무새들(LLM)한테 맡겨봤자 의미가 없다.
5월은 ...ㅎㅎ 날씨가 좋아 놀고 여행가고 컨퍼런스 갔다. 사실 뭐 다 퇴근하고 하는거라서 일도 그만큼 열심히 했다. 러버블로 랜딩페이지 만들고, 제품소개서 만들고, 카드뉴스 콘텐츠 만들었다.
또래 아이들이 슬슬 기말고사 준비를 하니 내 짧았던 한 학기 휴학도 이제 끝나감을 실감한다. 처음 휴학을 시작할 때 창업 이거 휴학 기간동안 못 살려내면 접겠다고 했는데 회고해보니 생각보다 한게 없는 것 같다. 내 인생은 망했다. ㅎㅎ 사실 창업이라는게 다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거 하나 살리지 못하면 안되는 상황에 있다. 친구들이 놀자는거 왜 다 받아줬지 싶고 그럼 이런 낙 없이 살아가는 한국의 대표님들은 얼마나 대단한건가 싶다. 그나마 독서모임 하고 창업스터디 하면서 조금의 뿌듯함은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심연이 존재하니 아래부터는 읽지 않아도 된다. (이어서)
https://blog.ghyeo.ng/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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