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는 과학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었다. 이것저것 논문 쓰고 프로젝트 하는 과정을 브이로그로 찍어서 올리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는데, 졸업하고 왜 조회수가 잘 안 나왔을까 하고 고민하는 일이 때때로 있었다. 나는 대체로 좋은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감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제대로 콘텐츠를 만들어 봤으니 관련 과로 대학도 왔고 줄곧 창업에 적용할 수 있었다. 유의미한 경험이었다고 생각은 한다. 다만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냐 하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잘 되기를 바라고 노력한 결과물이 대체로 안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보다 보면 그것만큼 마음이 아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3달간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설 검증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한 후에야 겨우 링크드인에 글 하나를 쓸 수 있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도 내가 링크드인에 좋아요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이고 안일한 감이 있었다. 사실 적절한 채널에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게 창업의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실행하기를 꺼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보잘것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뭔가 열심히 했는데 결국 안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처음 올린 글은 공들여 썼음에도 불구하고 타깃에 도달하지도, 좋아요를 받지도 못했다. 마치 편집된 유튜브 영상을 올렸을 때 조회수가 별로 나오지 않는 고통과도 같았다.
뭐 나야 작년만 해도 지원사업이 창업의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창업을 몰랐던 사람이다. 팀원들이 밀어줘서 어쩌다 보니 지원사업이 됐고, 창업경진대회에 나갔고, 과분할 정도로 많은 상과 관심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경진대회에 참가하면서 모든 팀의 발표에 귀 기울였는데 나는 절대 저 사람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좌절하고 있었다. 설대 수의예며 경찰 출신 약대생이며 유학파 등등을 경진대회에서 이기고 난 후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절대 내가 저들보다 잘하는 게 없는데 왜 이겼을까고, 둘은 그래도 이겼으니까 어깨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았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연합동아리 워크숍에 선정됐을 때에도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엑싯하고 재창업한 대표님과 3일간 호텔 조식을 먹으며 사회와 창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매출과 열정 모두 어마어마한 대표님과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서 기업가정신과 현실창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이야기했다. 학생회장 출신 토스 PO와 AI 비전을 나누었고, 일본/싱가포르 창업가와 영어로 국제적 변화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으며, 전 당근 CTO, 프라이머 대표님에게 피칭을 하며 멘토링을 받기도 했다. 아산에서 네트워킹 파티에 초대를 받으며 이 미친 인재 밀도의 그룹과 교류할 때는, 그때만 해도 뭔가 되는 것 같으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사람들에게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내가 가진 비전과 신념에 대해 그다지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없는 벽이 느껴졌지만 나도 그들과 같이 교류할 수 있는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며 이것저것 해 보고 있으니 나도 창업가로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느꼈다. 단 한 명의 고객도 만나보지 못하고, 단 한 건의 가설도 제대로 검증해보지 못한 채 한 해가 지나가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며 놀게 아니라 미친 듯이 콘텐츠를 만들었어야 했다. 안 되더라도 계속 실행하고, 계정 밴도 먹어보고, 며칠에 한 번씩은 아이템도 바꿔보고 하면서 처음부터 콘텐츠 중심, 판매 중심으로 갔어야 했다. 반면 나는 IR 중심, 경진대회 중심, 기술 중심으로 고객은 한 명도 안 만나보고 관심도 한 번도 못 얻어봤으면서 계속 뭔가 노력했을 때 되는 것 같은 일만 하고 있었다.
대표놀이였다. 파운더 혼자서 5명이나 되는 큰 팀을 탑다운으로 관리하니 되는 일도 없었고. 애초에 두 명이서 합숙하며 6개월간 새벽까지 콘텐츠 기반으로 삽질해야 나오는 건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끼지도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지도 못했다. 팀원과 최근에 구내식당 밥을 먹으면서, 여기는 밥이 너무 잘 나오고 시설이 너무 좋아서 문제라고, 햇반에 김치만 먹어가면서 버텨야 위기의식을 느끼고 실패할 준비를 한다고 그랬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이기고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저 사람들이 이제 저 멀리 가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제야 보기도 싫었던 EO를 보고, 마음 아팠던 권도균 대표님과의 미팅을 떠올렸으며, 나도 처음부터 시작할 채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진짜 대표였고 나는 대표놀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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