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1년 넘게 AI 하나로 시끌시끌하다. 변화도 엄청 빠르다. 시덥잖은 질문을 받아주는 챗봇에서 어느새 직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혼란스럽다. AI가 하루아침에 진로를 없애버리고 있다. AI 잘 쓰는 신입만 채용한다는 채용공고가 보이지만, 월 30만원에 달하는 구독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회사는 경력직들을 보며 구독해줄테니 토큰을 마음껏 낭비하라고 시킨다. AI 교육환경 마저도 경력직이 더 좋은데 대학생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래서 그런지, AI가 잡아먹지 않을 것 같은 분야로 도피하고 있는 듯하다. 소프트웨어에서 전자로, 의약으로 간다. 공포만 있고 적응은 없는 이 암울한 세상에서 AI가 대체 뭐고, 어떻게 해야 나는 안잡아먹힐까. 지피티 30만원 플랜 처음 나왔을 때부터 써본 입장에서 답해보려고 한다.
AI로 할 수 있는 걸 알려주는 사람은 많고, 할 수 없는 걸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야 강의가 잘 팔리고, 조회수가 잘 먹히니까 그렇다. 옐로우 저널리즘이다. 영상을 만들어볼 생각도 안했던 사람이 AI로 영상 쉽게 만들기 같은걸 보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매체를 소비한다. FOMO 때문이다. 마치 사진을 잘 찍지도 않던 사람이 아이폰 프로를 사면서 자기도 포토그래퍼가 될거라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텀블러를 쓰지도 않던 사람이 스탠리 텀블러를 사서 들고다닌다. 그래도 이런건 철저히 소비의 영역에 있었다. AI는 생산재니까 다소 혼란스러운데, 얘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AI로 만들고 싶은거 다 만드니 생산성이 엄청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다지 증가하지 않는다. 결국 AI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남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할 수 있는걸 막 해보면서 나는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정작 그 사람이 AI로 창출하는 가치는 본인의 구독료를 넘어서긴 어렵다.
결국 AI를 잘 쓰려면 AI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AI가 잘 하는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검색 시대에는 자료조사가 있었다. 예전에는 원하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기가 어려워서, 인터넷 자격증이 있었다. 구글 검색 잘하면 주는건데, 초등학교 5학년때 즈음에 이 자격증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검색어를 입력해도 원하는 데이터가 뜨지 않아서 이런저런 검색 테크닉을 써야만 했다. 네이버 블로그나 나무위키를 출처로 가져가면 쿠사리를 듣기도 했다. 구글 검색의 퀄리티가 올라가면서 이러한 자격증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현재 코딩이나 디자인과 같은 테크닉들을 배울 필요가 없다. 지금은 좀 조잡할지 몰라도 10년 뒤에는 분명 더 잘할 것이다. 우리는 10년이 지나도 AI가 못하는 것이 무엇일지 알고 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착각하는 점이 AI가 코딩을 잘하니까 개발자를 하면 안된다거나, 디자인을 잘하니까 디자이너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 반대다. AI가 코딩을 잘하니까, AI를 엄청나게 잘 쓰는 개발자가 필요하다. 추론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어떤 기술스택을 활용해서 어떻게 개발할지 고민하고 나서야 AI에게 정확한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어떤 결과물을 내달라고 말할 수 있다. 간혹 “제 AI는 그냥 시켜도 잘 나오던데요?”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 둘 중 하나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구현하려고 하거나, AI가 딸깍으로 내주는 반짝거리는 결과물에 매료된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LLM의 추론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언어모델(LLM)은 앵무새다. 그냥 많이 듣다보니 상황과 그에 맞는 언어를 학습했고, 그래서 얼추 맞아보이는 단어를 때려맞추는 행위를 한다. 그런데 학습한 게 무엇인지에 크게 좌우된다. 일례로 전자과 전공서적만 학습한 LLM은 회로 문제는 잘 풀지만, 경영학 원론은 잘 답변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LLM은 웹상의 모든 자료와 중고서적들을 학습했기 때문에 웬만한 내용을 잘 답변할 수 있다. 그럼 반대로 LLM에게 세상에 없던 내용을 만들라고 하면 만들지 못할 것이다. 어느덧 모델은 모종의 이유로 추론 능력이 증가했다. 이제 추론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은 AI가 잘 한다. Frontier Math를 만든 수학자가 tier 4 문제를 내면서 했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적어도 AI가 문제를 10년간은 풀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몇 주 전 등장한 Claude Fable 5는 88%의 문제를 풀어내며 벤치마크를 완전히 정복해버렸다.
이쯤에서 본 논문 중 하나는, 사람들의 뇌 구조 또한 언어모델과 비슷해서, 학습한 대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보고 뭔가를 풀어내는 모든 과정을 AI가 학습할 수 있다. LLM 엔지니어의 인터뷰에서 벤치마크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건 AI가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보는 모든 형태의 시험은 다시보면 벤치마크의 일종이라서, AI가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AI가 보다 못하는 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모든 종류의 공학적 사고, 문제, 결국 답이 하나로 수렴하는 모든 행위는 AI가 정복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코딩이 정복했다고 전자, 의학쪽으로 가다보면, 언젠가 그쪽도 AI가 하나하나 정복하는 수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사람의 사고는 언어모델보다 뛰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추론모델의 성능은 해가 다르게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이제 AI가 대부분의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보다 AI가 똑똑하다고 해서 가치를 창출하는건 아니다. 5년 전, GPT는 물론 언어모델이 나오지 않았을 때 Style transfer라는 실습용 AI 모델이 있었다. 찍은 사진을 고흐풍의 그림으로 변환해줬다. 결과적으로 나온 그림은 아주 조잡했다. 고흐의 작품도 아닌, 사진도 아닌 무언가는 조금의 신기함을 남긴 채 버려졌다. AI를 통해 나온 결과물은 사람의 손을 거치기 전까지 아무도 가치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새로 만든 무언가가 직접 쓰이거나 인정받지 않으면 버려질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은 미친듯이 좋은 도구의 능력을 활용해서 가치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 후 매킨토시가 부활할 때 think different라는 광고가 있었다. 광고는 매킨토시를 다르게 생각하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도구로 선전했다. 매킨토시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들이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마치 나보다 똑똑한 챗봇이 구독만 하면 내가 못하는걸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보인다. 그러나 똑같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통계학적 앵무새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은 비슷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만으로도 잘 굴러갔다. 제품을 만드는데에는 공학적 노력이 필요했고, 똑같은 책을 공부하고 비슷한 문제를 풀었던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AI가 등장하고 나서, 미친듯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미친듯이 잘 풀어내는 AI가 그들이 20년을 갈고닦아야 풀 수 있었던 문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AI보다 못하는 역량을 기를 이유가 사라졌다.
우리는 이 즈음에서 대학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제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초의 현대적 대학교인 베를린 대학교가 세워졌을 당시, 학교에는 교양, 법학, 의학, 신학 총 4개의 분과만 존재했고 공학 등의 분과는 없었다. 실용적 목적으로부터 자유한 상태에서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는 더 이상 사유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철학과를 나온 사람을 쓸모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대는 다시 사유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통계적으로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에서 계급시대 상류층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하인을 부려 필요한 공학적 노동과 계산을 시키고 본인은 사유의 힘을 뽐내던 세상이 AI로 인해 돌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AI가 공학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진 않는다. AI는 세상에 없던 논문을 쓰지 못한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 아이젠하워는 Plans are worthless, but planning is everything. 이라는 말을 남겼다. 국방 관련 연설 중에 한 발언이다. 결국 전쟁은 상황이 바뀌면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며 훈련된 사고가 결국 상황이 바뀐 전장에서 통하는 계획을 빠르게 만드는 힘을 기른다. 지금까지 풀어왔던 수학, 만들어왔던 코딩 포트폴리오들이 AI 시대에 쓸모없던 능력일지 몰라도, 상황에 맞게 사고하고 사유하는 능력이 커서 결국 AI를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만든다. 일례로 글을 쓰는 능력은 고유하다. AI가 쓴 글은 새로운 사유를 담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얼마나 가치를 창출하는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인정을 받는가. 그 과정에서 AI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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