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을 잊기가 어려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지금처럼 잘 쓰지 못했다. 다만 마음이 글의 전부여서, 못 다 전한 말을 글로 적은 후 어딘가에 보관해두었다. 적어두고 잊으려고 시작한 글쓰기는 되려 기분을 생생하게 불러일으켜서 결국 3년 정도를 더 잊지 못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계속 쓰고 쓰다보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래서 그런걸까, 내 글이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일은 잘 없는 것 같고, 내 아픔을 표현하고 나를 위로하는 목적에서 쓰여졌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요즘 쓰는 글이 무척이나 우울한지, 이따금 사람들이 심심한 위로를 전하곤 한다. 고맙다는 말 하나조차 잘 전하지 못하는 말주변을 가졌지만 누군가 그렇게 전해줄때면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무척 고맙다.
워낙 성격이 겁이 많고 불안해서 그런지 내 연애도 항상 삐걱거렸다. 큰 희생이 큰 사랑을 만들거라 믿었고, 미래와 책임을 내던지고 같이 있고싶고 그랬다. 머리가 커서 그런지 이제는 더이상 그런 사랑을 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라는게 "나"라는 경계선을 넘어가기가 어렵다. 나 자신을 먼저 챙겨야 그 여유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자신보다 상대가 먼저인 그런 사랑을 하면 그 행위가 정열적이고 강할 순 있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을 해치는, 밑이 빠져있는 것 같은 갈급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여전히 낭만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서 누구도 나를 희생할 만큼 사랑하긴 어려워졌다. 이런 사건들로 하여금 늙어가고 있는건가 싶다가도 그게 시행착오를 겪고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면 여전히 즐겁지 않나 생각한다.
시간은 흘러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게 익숙해졌다. 사람보다 클로드에게 물었더니 해결책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받는 도움은 잠깐이었고, 대개 그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주지 못했다. 결국 사랑의 필요를 잊은 채 삶을 살았다. 종종 받은 도움을 쉽게 잊어버렸으며 그들에게 충분히 보답하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에게 친해지려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 않으면 쉽게 무심해졌다. 나의 부족함인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보답을 바라고 그들이 그런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표현이, "고맙다"는 말 하나와 "미안하다"는 말 하나가 어쩌면 그 관계에 대한 발전 의지를 표명하는 선언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나를 의지하고, 나는 누군가를 의지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일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각인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협력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협력적인 태도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필요한 것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비록 나조차도 나에게 소홀해서 나만큼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썩 무심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땐 그들이 나에게 주는 관심을 보며 부담을 느끼기보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한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면서도 그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내가 나로써 온전하도록 가꾸는 것이 먼저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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