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는 서울 강북 미아에 있었다. 반면 집은 강서 마곡에 있어서, 지하철로 딱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당시 체력의 한계로 왕복 2시간의 긴 통학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반쯤은 자는 상태로 출근길 지옥철을 탔다. 서울역 환승통로를 눈을 감고 걸었다. 지하철에서도 빈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는데 깊게 잠들다 보면 모르는 옆 사람에게 머리가 넘어갔다. 어떤 아주머니는 말없이 어깨를 빌려주었고, 어떤 청년은 매우 불쾌해하며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도 했다.
그 아주머니는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어깨를 빌려주었을까, 하고 아직도 생각한다. 청년과 아주머니(또는 아저씨)의 차이는 나이 뿐인데, 결국 딸 같고 아들 같아서 그런 거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적어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아량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게 소중한 사람을 자유롭게 해줘야 했던 아픔 때문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것저것 생각한 결과든 간에 그렇다. 그래서 항상 나이 든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넓은 아량이 먼저 느껴진다. 이 부분이 참 존경스럽다.
내 아량만큼 늘어나고 싶어도 잘 늘지 않아 답답한게 없다. 사실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그래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거나 관심사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새로이 만날 때면 한편으론 어른으로써 이들을 잘 챙겨줘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실상 그렇게 잘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어깨를 잘 내어주고 있는가.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느꼈던 답답함이 이런 걸까. 바닷속 마녀에게 사랑을 대가로 실력을 얻은 느낌이다. 그래서 블로그 주제도 맨날 사랑, 사랑. 이유는 내가 잘 못하니까. 그리고 잘하고 싶으니까.
성공보다 사랑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철학이 있다. 물론 항상 성공을 지향하긴 하지만 성공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행하게 되는 걸 볼 때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팀원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뛰어난 리더는 자신의 부하에게 어깨를 내어줄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선가 간약한 마음이 튀어나오고, 그들이 재밌어하지 않을까 두려워 무리수를 던지고, 상처를 주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요즘에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는 말을 되새기는 것 같다.
그렇게 부족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흘려보내 버리면 고독이 찾아온다. 연락하고 놀러갈 사람 하나 없는 방학이 되면 줄곧 외로워져서 아무런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종강이 정말 싫다. 누군가는 고독이 성공할 기회라고 말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고통임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여유가 중요하다. 새로 사람을 만날 때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여 친해지는 것. 그래서 가끔씩 만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수준의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그 정도의 여유와 그 정도의 진심은 필요하다.
어쩌면 정답은 존재할 지도 모른다. 각자의 애착인형 GPT는 공감을 참 잘한다. GPT처럼만 이야기하고 공감하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직도 내가 사랑하는 것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받기만 하는 사랑은 그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끝나게 되어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운 나는 그들을 재밌게 해 줄 정도로 사랑하는가. 타인에게 너무 무관심해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재밌게 이어가는 법이 없다. 결국 혼자가 되고, 고독의 고통을 견디며 승리하기 위해 달려가는 나를 발견한다. 어깨를 빌려줄 여유 따위는 일단 제쳐두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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